"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무진기행(김승옥) 원작 만화의 강점은 명징해지는 사건보다는 마을과 이장, 그 부하들이 만들어낸 비밀스런 무언가가 제시하는 모호한 진실이었다. 진정 무서운 것은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기에.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위에 쓴 무진기행이 생각난지도 모르겠다. 강우석은 뛰어난 감독이다. 적어도 그의 영화 내에서 모든 사건은 완결된다. 그리스비극처럼. 그렇지만 이 특징이 자신의 장점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감독은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완결된 이야기에 대한 집착은 뛰어난 촬영(조명과 포커스, 편집)과 이야기의 완급조절을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한다. 거기에 마지막 씬에 나오는 영지와 해국 사이의 대립적인 리액션 컷 위로 흐르는 회상의 보이스 오버는 인물들이 구축해 놓았던 대립마저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힘 절반은 원작 만화이고 나머지 부분의 3분의 2는 감독의 역량이다. 나머지 부분, 원작에 붙인 감독의 주석은 이 영화를 망쳐놓았다.
[영화]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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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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