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끔 '나'로 썼다가 '너'로 썼다가 '그'로 쓴다. 1인칭은 무조건 감정이입할 수 있고 2인칭은 내가 나에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며 3인칭은 객관성을 확보함으로써 내면과 바깥 환경 모두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나라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동시에 가장 잘 <보일 수 있다>. 중간자적 존재인 동시에 양극을 모두 수렴하고, 또 발산할 수도 있다. 실재인 동시에 허구일 수도 있다. 이 소설처럼. 이 인물들처럼. 이 사건들처럼. 언제나 종이 한 장 차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원래-지금-앞으로 존재함을 일컫는다기보다는 그것을 믿음으로써, 또 언어화함으로써 그제서야 구체화되어 생겨날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나였을까. 혹은 나라고 이름지었을때부터 나이기 시작한 걸까. 내 이름은 나의 존재에 대한 집인가 아니면 존재 자체인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가. 나는 사실 내가 말하면서도 뭐라고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도서]
보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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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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