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은 우연적으로 닥친다. 흑사병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예견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이것은 단지 인내되어야 할 뿐이다. 「빨강 모자 소녀」의 채록된 35개의 판본 중에서 반 이상이 앞에 인용한 판본처럼 늑대가 소녀를 잡아먹는 것으로 끝난다. 그 소녀는 그런 운명을 겪어야 할 일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 그 소녀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은 것도 …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지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뿐이다. 그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18세기 이후에 그 이야기가 얻게 되곤 하였던 해피 엔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난이 지니는 불가해하고 비정한 성격에 있는 것이다." (p.86) //
「빨강 모자 소녀」를 보면 마치 일본 공포물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그런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지만, 한국의 공포물이 재난을 입는 대상에게 그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여, 권선징악 또는 사필귀정의 교훈을 주고자 한다면, 일본의 그것은 한국식 이야기 전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 없는 재난의 우연성을 보여준다. 그냥 운이 없으면 당하고 마는 것이다. 저렇게 죽으면 억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처음엔 들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죽음 자체가 이미 충분히 억울한 일인데, 그것에 또 무슨 이유를 붙이는 게 필요할까 싶다. 그래서 일본의 공포물은 모든 것이 나중에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한국의 그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찜찜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끝나지만, 그 방식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