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술 마시며 카메라 초점 이야기하다가 생각나서 에잇, 이참에! 하면서 새벽에 다시 봐버렸다. 긴 복도를 따라 하염없이 아이들을 따라가던 샷은 여전히,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매끄럽고 환한 복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미국 고등학교의 일상이, 아이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그 위를 걸어다닌다. 강의실로, 락커룸으로, 식당으로, 운동장으로 이동하는 이 샷들은 묘한 운율감을 가지고 있는데, 시에서 각운을 맞추듯 배치된 슬로우 모션과(처음엔 눈치채지도 못했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소음들(엘리펀트는 볼륨 크게 하고 봐야함), 그리고 샷 사이에 조금씩 어긋나있는 시간대가 묘한 긴장과 호흡을 만들어 낸다. 베테랑들이 연주하는 잼 세션처럼. 음악적이고 아름다운. 문제는 카메라 초점이 마술같이 살짝살짝 나가는 느낌이 나는데 이게 허를 찌른다. 예전에 극장에서 선배랑 보고 나와서 서로 동시에 물었다. '포커스는 일부러 그런걸까' '에이 설마' '근데 너무 절묘한 것 같아.' '혹 영사기 포커스가 안 맞은 건 아니겠지?'(침묵-) 이번에 DVD로 봐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건 마찬가지. '술 때문인가?'(다시 침묵-) 사실 아이들을 따라가는 이 복도 샷들은 엘리펀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그것들 스스로 엘리펀트라는 영화의 고유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마치 홍상수 영화의 소주 씬들처럼. 구스 반 산트의 예전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비록 '아이다호'의 더 없이 멋지고 쓸쓸한 미국의 길들은 학교의 복도로 들어왔지만, '리버피닉스'나 '맷 데이먼'처럼 방황하던 청춘들도 없지만, 굿 윌 헌팅과 파인딩 포레스터 이후 구스 반 산트는 확실히 한 계단을 훌쩍 뛰어 오른 것이다. 온갖 선정적인 문구과 섣부른 분석으로 떠들어대던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의 주인공들을 무관심한 듯 담아내며, 장님 코끼리 만지듯, 다층적인 시선으로, 즉흥연주가 흐르는 듯, 아름답게.
[영화]
엘리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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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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